반달곰은, 의신마을주민들 덕분에 행복하다_ 제2회 곰깸축제 후기
‘곰깸축제? 그게 뭔데’, 지인들에게 곰깸축제에 오라는 말했을 때 온 첫 질문이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반달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걸 축하하는 마을축제인데, 근데 그게 그러니까, 지리산자락에서 반달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걸 축하하는 건, 그러니까 반달곰과 함께 살아가는 걸 받아들이는 거니,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거든요. 음..’ 곰깸축제를 설명하는 시간은 언제나 말이 길어지고, 음, 그게, 그러니까를 몇 번 반복해야 했다.
곰깸축제는 작년 처음시작되었다. 곰깸축제라는 걸 하자고 지리산자락 이 마을, 저 마을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인 곳은 하동 의신마을 한 곳이었다. 당시 이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을회의를 했는데, 모두 다 찬성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을은 곰과 인연이 깊으니 한번 해보자고 논의가 모아졌어요. 한번 해봅시다.’
제1회 곰깸축제 후 마을에서는 곰깸축제, 그거 괜찮은 거 같다고, 올해도 의신마을에서 하자고 제안을 했다. 국립공원공단에서도 흔쾌히 후원을 약속했고, 마을에서는 작년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제2회 곰깸축제는 4월 13일 ~14일, 하동 의신마을에서 의신마을회와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이 주최하고, 국립공원공단의 후원으로 준비되었다. 마을주민과 반달곰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사회가 함께 한다는 전제하에 ‘제2회 곰깸축제위원회’를 구성하고, 프로그램과 역할분담 등을 포함한 모든 걸 회의에서 논의하고 결정하였다.
곰깸축제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더디고 천천히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흔한 축제처럼 유명한 대중가수가 오거나, 인사를 초청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 안의 논의를 소중히 하였고, 마을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서 고민하였으며, 반달곰과 국립공원에 대한 갈등과 불만이 나와도 듣고, 고개 끄덕이며, 축제를 준비하였다.
곰깸축제를 보러 외지인들이 얼마나 올지, 곰깸축제가 마을에 실질적인 이익이 될지, 곰깸축제를 하는 것으로 반달곰과의 공존인식이 높아질 수 있을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하더라도, 실행하지 않고 불평하기 보다는, 하고나서 평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금, 곰깸축제가 끝난 지 1주일이 지난 오늘, 제2회 곰깸축제를 공유한다. 곰깸축제의 공유는 부분적이고 분절적이다. 더 자세한 건? 그건 현장에 있어야만 알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더 알고 싶다면, 내년 제3회 곰깸축제에 와줄 것을 부탁한다.
# 아침 9시 ~ 12시 / 마을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아지는 시간
최진기 이장, 정찬열 총무, 최연선 청년회장 등을 포함한 청년회원들, 모두는 천막을 치고, 현수막을 거느라고 분주합니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고 반달곰과 국립공원과 함께 하는 일에 이리 나서주니 바라보는 사람들은 따뜻해지고 흐뭇해집니다.
동네 아이들은 축제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신이 나고, 부녀회원들은 집에 있던 수공예 소품들을 들고 나오고, 전과 튀김, 떡볶이, 오뎅 등 마을장터 준비에 한창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경남사무소, 국립공원종복원기술원, 베어빌리지법인 등도 체험, 전시 부스를 설치합니다. 봄날 의신마을은 그 빛깔만큼 환하게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 낮 2시 ~ 4시 / 보고, 듣고, 먹고, 만들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곰깸축제에 대해 묻고, 돌에 그려진 아이들의 그림을 바라보며 행복해합니다. 두릅튀김을 먹으며 진짜 맛나다고 입을 모으고, 다육이 화분을 만들고, 곰티를 입어보고, 달고미인형과 사진을 찍으며 곰과 친구가 되어갑니다.
# 낮4시 ~5시 10분 / 송관섭 PD가 전하는 곰과 함께 산다는 것은?
MBC 다큐멘터리 ‘곰’을 연출한 송관섭 PD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곰에 대해, 다큐 ‘곰’을 찍으며 가장 마음이 가는 곰은 어떤 곰이었는지, 곰과의 공존이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웃고, 고개를 끄덕이다, 그러다가 마음이 짠하여 잠깐 눈앞이 흐려지기도 합니다.
반달곰을 포함한 야생동물의 구조, 치료 등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공원종복원기술원 이안나 연구원은 다큐 ‘곰’ 촬영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송관섭 PD가 남이 아니라 반달곰 복원사업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감동적인 다큐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낮 5시 30분 ~ 6시 30분 / 정성이 가득한 산촌밥상
깨어남 한마당을 위한 리허설이 진행되는 시간, 리코더와 해금 연주를 해보고, 반달곰 깨어남 의례를 위해 함께하는 아이들, 춤꾼 등이 이야기를 합니다. 의신마을 어머님들로 구성된 ‘반달곰 합창단’이 무대에서 노래를 연습을 하고, 점점 기대감이 높아집니다.
마을회관에서 리허설을 하는 동안 선학관에서는 베어빌리지법인에서 준비한 저녁밥 나누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리산자락에서 자란 산나물에, 마을분들이 직접 만든 두부와 묵, 맛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밥상입니다.
# 저녁 7시 ~ 8시 30분 / 깨어남 의례와 깨어남 한마당, 그 절정의 시간으로
제2회 곰깸축제를 알리며 화개면 풍물단이 마을회관으로 들어오자 회관은 떠나갈 듯이 들썩입니다. 좋은 날입니다. ‘깨어남 한마당’은 반달곰 등장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반달곰이 나타나자 박수와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반달곰은 기지개를 켜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립니다.
반달곰과 함께 사는 일은 늘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마을사람들은 1년 내내 산에서 살아갑니다. 산나물도 뜨고, 버섯도 채취하고, 열매도 주우러 산에 들어가는데 반달곰이 있으니 겁이 납니다. 그러니 반달곰 복원사업에 불만도 많고, 꿀과 수액 등에 손을 대는 반달곰이 밉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오래전부터 지리산에서 살아온 반달곰에게 지리산은 그냥 삶터일 뿐입니다. 반달곰은 지리산에서 자고,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똥을 싸서 나무와 풀들을 널리널리 퍼뜨립니다. 반달곰이 사니, 사람들도, 다른 동물들도 지리산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리산과 반달곰은, 반달곰과 사람들은 하나로 연결된 존재입니다.
반달곰이 있어 속상하고, 두려운 날들도 있었으나 오늘은 즐겁습니다. 반달곰 덕분에 마을사람들이 하나가 되었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도 의신마을과 마을사람들 덕분에 흥겨워집니다. 깨어남 의례에 참여한 아이들도, 반달곰 탈을 쓴 청년도, 춤을 춘 박일화 님도, 풍성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500년 전 이곳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살아온 의신마을사람들, 산촌에 산다는 게 녹녹치 않았지만 마을문화를 만들고, 협력해서 살고자 노력한 덕분에 이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아침이면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모이는 의신슈퍼 앞은 시끌시끌해집니다. 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농산촌에서는 아이들로 인해 보기 드문 풍경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곳이 의신마을입니다. 마을아이들이 모둠북으로 ‘곰 세 마리’를 연주하니 어머님도, 아저씨도, 언니오빠들도 기특해합니다.
최진기 이장님이 마을사람들과 마을을 방문한 분들에게 환영과 감사의 말을 전하고, 화답을 한 듯 이혜숙 님이 리코더로 동요를 연주합니다. 지리산 어딘가에서 잠을 청하던 반달곰도 리코더 소리에 미소 지을 거 같은 신비로운 밤입니다. 구례에 사는 김지희 님이 연주한 해금소리에 어머님들은 신이 났습니다. 반달곰의 등장도, 리코더와 해금 연주도, 모든 걸 신나고 흥겨움으로 바꿔내는 어머님들은 대단한 능력자입니다.
곰깸축제를 위해 ‘반달곰 합창단’을 만들어 한 달간 열심히 연습한 어머님들의 차례입니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있으면서 ‘허리야, 다리야’ 하시던 어머님들은 무대에 나오자 갑자기 힘이 나는 듯합니다. 어머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이웃집 아버님 모두 열광합니다.
지금까지 다녀본 축제 중 최고라고, 우리 어머님들 대단하다고, 반달곰 덕분에 맘껏 웃다간다고, 의신마을이 너무 좋다고, 다들 한마디씩 던집니다. 아, 봄밤에 진행된 가슴 벅찬 시간, 곰깸축제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곰깸축제가 진행된 1박 2일 동안 의신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의신옛길을 걷고, 대나무로 찻잔받침을 만들고, 흥겨운 어머님들을 만나고, 반달곰을 받아들이며 함께 살자고 말하는 마을사람들을 만나며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덕평봉 아래 자리 잡은 의신마을과 의신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봄밤에 빛나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곳곳에 펼쳐진 지리산의 봄빛에 감동하였습니다.
반달곰과 함께 살아야 하는 마을사람들에게 지리산과 반달곰은 부담스럽고 귀찮고 힘겨운 존재가 아니라 마을의 가치를 높이고, 마을사람들을 단합시키고, 행복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 지리산도 반달곰도 지켜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곰깸축제는 앞으로도 그런 시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_ 윤주옥 이사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사진_ 허명구 님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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